이번 설에는 어머니와 의논해서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 엄마와 조금 더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 일 년에 한 번으로 간소화하거나 아예 지내지 않을 생각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실 때는 차례, 제사의 의미성을 워낙 중요하게 생각하시니 깊게 말씀드려 보지는 못했으나 개인적으로 현재의 노동집약적(?)인 제사 시스템은 좀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어린 시절에는 먹을 것도 많고 가족들도 보고 마냥 좋았지만 성인이 되어 이 제사, 차례를 좀 살펴보고 나서는 항상 갈등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더라. 매번 절대적인 노동량은 정해져있는데 노동을 투여하는 자(여자) 와 혜택을 누리는 자(남자)는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고, 노동에 투입되는 구성원간(시할머니, 시어머니, 며느리들)에는 각자의 위계와 룰이 존재하는데 그마저도 서로 생각하는 범위가 다르다. 힘겨운 노동이니 가능한 서로가 서로에게 전가하고 싶은 마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갈등을 발생시킨다. 명절이 지나면 작게 또는 크게 발생하는 일반적인 풍경이다.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은 조상을 기리는 이 과정에서 정작 노동을 투여하고 있는 이는 한 번도 그 조상님과 일면식도 없는 또는 정서적인 연대가 없거나 적은 며느리들이다.


물론 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막상 차례는 지내지 않고 성묘만 다녀오니 유교 가치관이 깊은 가정에서 자란 덕분인지 왠지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미안하고 나 또한 한 번도 뵌적이 없는 조상님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 아마 정서적인 연대감이 강한 어머니는 힘들더라도 아버지 제사는 지내고 싶으셨을 것 같고 와이프도 이제 결혼한지 10년이 넘어서 제사에 큰 거부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조상을 기리고 생각하는 그 마음은 꼭 이어져야 할 숭고함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당장 우리 딸들에게도 알려주어야 할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희생이 기반된 현재의 방식만이 유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의무, 절차, 법도와 같은 현재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냥 보고 싶고, 생각날 때 딸들 데리고 아버지 산소에 가서 잠시 쉬다 오고 싶은 가벼움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좀 다른 방식을 생각해 볼 참이다.

Posted by honeybadger 트랙백 0 : 댓글 0